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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과 인간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 엄마와 봄을 사랑한 금아(琴兒)

by 운제산 구름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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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 엄마와 봄을 사랑한 금아(琴兒)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선생 (1910~2007)은 영문학자이며 수필가 로서 그 명성이 높은 분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시어 소년시절을 보내고, 청년시절은 중국 상해에서 지내면서 상해에 있는 호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 졸업한 후, 귀국하여 1946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재직하였다. 지난 2007년 5월 노환(老患)으로 별세(別世)하셨으니 세수 97세까지 사신 셈이다. 선생이 출생한 1910년은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준 해였으며 그 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무려 36년 동안 받아야했던 암울한 시대였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민족상잔(民族相殘)의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해야 했으며, 그 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모두 경험하신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오신 분이다. 이런 와중(渦中)에서 1세기 가까운 삶 을 사셨으니 수명(壽命)의 복(福)을 타고 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수(長壽)”라는 선생의 수필에 보면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참된 장수 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 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인연, p.80)

 

위의 인용문처럼 선생께서는 생전에 이와 같은 생활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선생이 남기신 수필들을 읽어보면 선생이야말로 유한(有限) 한 인생을 값지게 사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의 연보(年譜)에는 7세 때 부친을 10세 때 모친과 사별(死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고아(孤兒)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것 을 보면, 스스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해 왔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수필집 “인연”은 출판사인 범우문고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이후 선생이 집필한 수필들을 다시 모아 출판한 것으로 금아 선생의 진면목(眞面目)을 읽을 수 있다. 이 “인연”의 책자 앞부분에서 “신판을 내면서”라는 짧은 글에서 “잃어버릴 뻔한 수필 몇 편을 찾아내어 “인연” 이라는 이름으로 이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금아 선생의 수필의 대하여 문학 평론가인 김우창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금아 선생의 글이 우리 삶의 착잡한 모습의 전모를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할지는 모르나(더러는 그것이 너무 소박한 것인 때도 있으나), 그것 은 우리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목가적 이상을 상기시켜준다. 그 목가는 우리 모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온화한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날에 있다고 말씀하신다.(피천득론에서)

 

이와는 달리 중국 문학자인 차주환 교수는 금아 선생의 수필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단정적으로 내세운 수필의 성격은 청자 연적, 난, 학, 청초하고 날렵한 여인 등 사물에의 비유 이외에,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수필은 독백이다“고 한 것이 있다. 마음의 산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함을 말했다. 그 필요의 한계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경지를 실어내는 단계에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독백이라는 단정에서 그는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으로 수필을 규정짓기에 이른다.(차주환, 피천득의 수필세계에서)

 

이 두 분의 설명에서도 금아 선생의 수필의 성격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선생의 수필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으며 흔히 우리 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모든 사건이 수필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가족, 주변의 자연, 자기 자신과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 등 모든 것이 수필의 재료가 됨을 보여 준다. 특히 선생의 수필은 내용이 길지 않고 짧은 단상(斷想)들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이 글들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선생이 남기신 수필을 읽어 보면, 아버지를 회고하는 글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려운 반면,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정(愛情)은 각별했다. “엄마”라 는 수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의 애틋한 글이 나온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道)에 가까웠 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녀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인연, pp98- 99)

 

선생은 엄마 같은 애인을 갖고 싶었고,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나 는 그 후 외지를 돌아다니느라고 엄마의 무덤까지 잃어버렸다. 다행이 그녀의 사진이 지금 내 책상위에 놓여 있다. 삼십 시대에 이 세상을 떠난 그녀는 언제나 젊고 아름답다.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 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속에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은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나는 엄마 아들답지 않은 때가 많으나 그래도 엄마의 아들이다.(인연,p. 99)

 

김우창 교수도 금아 선생이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정(情)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선생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특히 애절했던 것은 어머니가 남편을 여읜 젊은 과부로서 상실의 경험을 겪은 분이었고 선생 자신도 이러한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모습은 그러므로 단순히 아늑하고 따스한 것이 아니라 상실의 고통 속에 아늑하고 따스한 것을 지킨 그러한 사랑의 모습으로 생각된다.(김우창, 피천득론에서)

 

선생이 수필에서 엄마라고 묘사한 부분은 바로 선생의 소박하고 순진한 마음에서 우러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려서 사별(死別)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동안 선생의 가슴에 깊게 각인(刻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들을 보면 선생이 엄마를 얼마나 소중하게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진솔(眞率)한 표현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평소의 금아 선생은 사계절 중에 천지만물이 소생 (蘇生)하는 봄을 가장 좋아했던것 같다. 선생께서 쓰신 글 중에서 봄에 대한 글은 “신춘(新春)”, “조춘(早春)”, 그리고 “봄” 과 “오월” 등을 들 수 가 있는데, “신춘”이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봄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1월이 되면 새봄은 온 것이다. 자정이 넘으면 날이 캄캄해도 새벽이 된 거와 같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1월은 봄이다. 따뜻한 4월, 5월은 어 떻게 하느냐고? 봄은 다섯 달이라도 좋다. 우리나라의 봄은 짧은 편이지 만, 1월부터 5월 까지를 봄이라고 불러도 좋다".(인연,p.20)

 

또한 “조춘(早春)”이란 글에서는 봄을 기다리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 고 있다.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요.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볕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다. 이제는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음이 초록빛 ”슈트케이스“를 마차에 싣고 넓어 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인연,p.23)

 

그리고 “봄”이라는 선생의 수필에는 봄을 젊음에 비유를 하면서 이렇 게 적고 있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 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젊음은 다시 가져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봄이다.(인연, p. 28)

 

“오월”이라는 작품에서는 이 달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음은 선생께서 일 년 12달 중에 신록의 계절인 오월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인연, p.34)

 

선생은 이처럼 젊음을 상징하는 봄과 오월을 무척 좋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글에서는 처녀가 시집와서 김장 30번만 담그면 늙음이  온다는 말을 한 것을 보아 세월이 흐름을 무척 아쉬워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필자도 계절 중에 따뜻한 봄을 가장 좋아한다. 겨울은 을씨년스럽 고 어둡게 느껴지기 때문에 싫어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눈 녹은 토양 위로 용수철처럼 활기차게 싹을 내미는 봄은 바로 생명이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선생은 영문학자이기도 했지만 수필가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왔다. 특히 선생의 “수필”이라는 글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 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되고 있는 수필의 특징은 바로 많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금아 선생의 소박한 모습이 되기에 충분하다. 선생은 “잠”이라는 수필에서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은 괴로 운 인생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인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생전(生前) 에 선생이 제일 좋아했던 달인 오월에 영면(永眠)에 드셨으니 또 다른 세상에서 축복을 누리고 계실 것으로 사료된다. 선생은 타계(他界)하셨지만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주옥(珠玉)같은 수필은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 피천득선생은 영문학자이며 수필가이다. 호는 금아이며 191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국 상해의 호 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1946~74년까지 서울대에서 재직, 2007년 5월 25일 서울에서 노환( 老患)으로 별세(別世) 향년(享年) 9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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