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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과 인간

-정찬주의 “소설 무소유”를 읽고

by 운제산 구름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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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일주문

 

 

-정찬주의 소설 무소유를 읽고

 

법정스님(1932.10.8-2010.3.11)께서 200710월에 폐암으로 진단받아 수술하신 이후, 당신이 직접 창건(創建)하신 길상사에서 이전처럼 정기 대중법문도 하시고 글도 다시 쓰실 정도로 회복하셨다. 그 후 20094월에 병고(病苦)가 재발하여 치료, 요양해 왔으나 더 이상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하시고, 2010311일에 세수(歲壽) 79, 법납(法臘) 56세로 입적(入寂)하셨다.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님을 직접 친견(親見)하지는 못했지만, 스님의 쓰신 많은 책자를 통해 스님의 사상(思想)과 진면목(眞面目)을 알게 되었고, 마음속 깊이 존경해 왔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은 스님의 맑고, 순수한 글 읽기를 좋아하는 애독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스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님과 가까이 지내신 분들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분 들은 다름 아닌 평소 스님을 모셨던 상좌스님들과 이 글을 쓴 작가이다. 작가는 스님으로부터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라는 법명(法名)을 받고 스님의 속가(俗家)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법정스님 이야기인 소설 무소유는 스님의 자서전적(自敍傳的)인 소설이다. 스님이 태어나신 해남 고향 바다마을 부터 시작하여 인접해 있는 목포에서의 학창생활,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여 재학 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출가(出家)하기 위해 번민하는 청년 법정의 모습, 출가 후 행자 법정의 모습, 그 후 쌍계사 탑전 시자 생활, 해인사, 다래헌, 불일암, 그리고 마지막 거처가 된 강원도 오두막, 입적에 이르기까지의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필자는 삶과 죽음마저 무소유한 스님의 일대기(一代記)를 읽으면서 스님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를 일찍 사별(死別)하고 스님이 체험해야만 했던 가난의 고통과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 번민(煩悶)하는 인간 법정의 모습들을 읽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동(感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스님은 생전 스님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름다운 봄날, 꽃이 피고 새소리가 가득한 불일암! 텅 빈 산골에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19754월에 불일암에 첫 걸음을 하셨을 때, 지금처럼 활짝 핀 벚꽃의 순수함에 반하여 이곳에 살아야겠다고 하셨지요. 유난히도 꽃을 사랑하셨던 스님!

스님이 떠나신 그 자리에 스님의 무소유의 삶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평소 단순함과 간소함으로 홀로 있음을 즐기시고 침묵으로 자기 질서에 투철하셨던 스님!

출가 수행자는 고독위에 우뚝 서야 한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홀로 외롭게 고독하게 수행하시며 더불어 사셨던 스님!“(20104월 불일암 암주 덕조스님)

 

길상사 주지인 덕현스님도 스승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며 스님을 회상한다.

 

스님은 한 생애를 던져 투과하며 화살처럼 곧게 날아가셨고

색깔 없는 수행자의 옷을 입고

가장 깊은 은자처럼 살면서도 세상을 그토록 내밀하게 열애하셨으니,

가장 높고 어려운 것을 가장 단순하고 쉽게 말하고,

말보다 행으로, 행보다 존재로 먼저 드러내 보이셨으니,

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외로움의 지존과 청정함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셨으니, 도대체 누가 또 그렇게 한단 말인가. “(길상사 주지, 덕현스님)

 

이 두 스님의 법정스님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스님의 진면목을 잘 알 수가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주변의 어려운 중생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회향(回向)하신 스님, 그러나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하셨던 스님이야 말로 진정 이 시대의 위대한 스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지병(持病)이 없었더라면 더 사시면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감로수(甘露水)와 같은 부처님의 법문을 쉬운 말로 들려주었을 것인데, 이제는 스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대원사 회주이신 현장스님도 생전의 법정스님의 모습을 다음으로 설명한다.

 

법정스님께서는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테벳사람처럼 살다가 인도사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출가한 뒤로는 속가 사람들에게 냉담하고 출가 전 이야기는 입 밖에 내기를 꺼려하셨던 스님께서 정찬주 작가에게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애기해주듯이 당신의 어린 시절부터 출가 전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주었습니다. 땅끝 마을 가난한 시골 소년이 탐욕과 무지의 세속을 벗어나 무아와 무소유의 삶을 이루는 과정들이 우리 삶을 눈뜨게 하고 깨어나게 할 것 같습니다.(대원사 회주, 현장스님)

 

현장스님의 말대로 작가는 법정스님을 수시로 친견하면서 스님으로부터 이 자서전적 소설의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책의 방향을 수행자 법정이 아닌 인간 법정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나는 고승을 소재로 해서 여러 편의 소설을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깨달음을 이룬 고승의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쓰기보다는 고독한 실존의 인간이 어떻게 맑고 향기로운 꽃이 되는가를 써보고 싶었다. 한 인간이 사바의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덕화의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그려보고 싶었다. 스님이 남긴 인간적인 법향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이 살아 계실 때는 스님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가 지금에야 스님과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깨닫고 있다.(작가후기에서)

 

나는 스님의 좋은 말씀을 나열하기보다는 당신식대로 살기를 원했던 의지와 텅 빈 충만을 이루고자 했던 당신의 마음을 살피고자 노력했다. 스님께서는 무소유로 인하여 무엇을 얻었는지, 출가 전의 고난과 고독을 스님은 어떤 방식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는지를 그리고자 했다. 스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작가후기에서)

 

스님도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스님은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두려움은 전혀 없었고,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육신을 하루 빨리 다비장 장작불에 들어가기를 염원했다고 한다. 입적 전날 스님은 자신이 손수 작성한 장례에 관한 글을 문도들에게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일체의 번거로운 장례의식은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 화환과 부의금을 받지 말라. 삼일장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비도 세우지 말라.(정찬주, 소설 무소유, p.305)

 

이것이 스님의 마지막 유언(遺言)이 된 셈인데, 문도들은 스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일을 이행하였다. 다만 다비를 위해 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로 운구(運柩)하는 문제로 인해 부득 삼일장에 대한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다. 스님의 유언은 우리들에게도 언제가 예외 없이 맞이하게 될 죽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이제 법정스님의 모습은 스님을 경배(敬拜)해왔던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남게 되었고, 입적(入寂)하시기 전까지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스님이 집필한 책들만이 우리들 곁에 남아 있다. 지난 2002년 동안거 결재법회에서 스님은 자신이 불법을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발을 수 있었던 것을 더없는 행운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지나간 생을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 불법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늘 절실하게 느낍니다. 사람은 어떤 만남에 의해 거듭 형성되어 갑니다. 일찍이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도 부처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意志)대로 살아오신 법정스님은 이 세상의 모든 천지만물을 소중히 여겨 사랑한 자연주의자(自然主義者), 인간을 존중해 온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 엄격한 외모와는 달리 내면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 폭력과 억압을 싫어한 자유주의자(自由主義者)라고 할 수 있다. 생전(生前)에 스님이 몸소 보여주신 맑은 정신과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자는 무소유의 정신을 우리들은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스님은 다시 태어나도 출가사문의 길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대자유인으로 지내는 구도자(求道者)의 생활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법정스님, 극락왕생(極樂往生)하시어 더없는 복락(福樂)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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