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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과 인간

-석용산스님의 “소설 등신불(等身佛)”

by 운제산 구름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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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산스님의 소설 등신불(等身佛)

 

이 두 권의 책을 쓴 스님은 1995년 초가을 발문(跋文)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라 했으니 누구의 삶인들 극적인 요소가 없으랴만 내 삶을 돌이켜볼 때 구석구석, 고비고비 극적인 요소가 아닌 곳이 없는 기막힌 드라마였다.

 

위의 인용문처럼 스님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 세상을 살다가 열반(涅槃)에 드셨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스님이 쓴 소설 등신불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과 중국에서 등신불이 되어 지장왕보살로 칭송(稱頌)받고 있는 신라 왕세자였던 김교각스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신라의 왕자로 태어난 스님은 24세에 왕좌(王座)를 이복형제(異腹兄弟)들에게 양보하고 출가(出家),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구화산(九華山)에서 75년간 수행, 정진하여 도()를 이루고, 세수(歲壽) 99세에 열반하였다. 스님에 대한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불명(佛名)이 교각(喬角)인 스님은 자신의 수명(壽命)이 다했음을 알고 제자들에게 독을 가져오게 하여 그 속에 들어가 바로 입적(入寂)하였고 3년이 지나서 독을 개옹(開甕)하도록 당부하였다. 3년 후 제자들이 지나 독을 여니 스님의 육신(肉身)은 썩지 않고 생전(生前)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며, 스님의 육신을 개금(改金)하여 남대(南臺) 암자(庵子)에 등신불(等身佛)로 모시게 되었다. 스님은 신라가 통일왕국을 이루고 당나라와 유대가 깊었던 696년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 출생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제 33대 성덕왕이었으며 그의 속가명(俗家名)은 김중경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중국 구화산 육신보전(肉身寶殿) 8각 목탑(木塔) 속에 등신불로 모셔져 있으며 이곳 구화산은 지장도량으로, 아미산 보현도량, 오대산 문수도량, 보타산 관음도량등과 함께 중국 불교의 4대 성지(聖地)로 수많은 불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용산스님은 이 소설에서 김교각스님의 생애(生涯)를 쓰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왔던 부끄럽고 참담했던 과거를 참회(懺悔)하는 자서전(自敍傳)적인 이야기도 함께 다루었다고 밝히고 있다.

 

용산 스님은 그의 저서인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1992)가 베스트셀러(bestseller)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스님의 이름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하였고, 이 무렵 국내 유명 TV방송국에도 출연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1년에 4, 5백회의 법회(法會)를 여는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생전의 스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스님이 이 세상에 남겨놓은 책을 통하여 스님을 만나고 있는데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스님의 얼굴을 보면 너무나 수려(秀麗)하여 영화배우로 진출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스님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여보게 이 땅에 다시 오려나(1993)”에서 불제자(佛弟子)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내는 사십을 못 넘기고 여인네는 모두 과부가 되는 가문의 내력을 벗겨보겠다고, 그 저주의 업을 풀어보겠다고 몸부림친 세월, 그러나 그 저주의 내력이 바로 부처의 가피요, 그 업연의 바다가 그대로 불보살의 세계임을 알아버린 기쁨과 허허로움...어찌 설명해야 하나”(p.13)

 

스님이 쓴 글을 읽어보면 여기, 저기에서 원효 스님에 대한 글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자기 스스로를 원효의 아들, 먹통거사로 부르면서 원효 스님의 사상을 존경하고 흠모(欽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수행해야 될 목표를 원효 스님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무애성사에 대한 다음의 글에서도 용산 스님이 얼마나 스님을 존경했는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원효대사!

이 땅이 낳은 우뚝한 스승!

(). ()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 속이 둘이 아니었던 그의 가슴

사바 중생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살다 가신 분

친근한 이웃 대제국이었던 중국의 사상계를 뒤흔들고 격식을 뛰어넘는 그의 행(),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민족임을 일깨워 삼국 통일에 큰 몫을 하시었으며 천촌만락(千村萬落)에 무애가(無碍歌)를 흘리어 바람곁마다에 아미타불소리 메아리치게 했다.”(p.147)

 

용산스님은 원효스님이 머물렀던 전국 곳곳의 사찰과 암자를 찾아 그의 흔적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한 때는 원효에 미쳐 원효스님의 발길이 닿았던 방방곡곡을 헤멘 일이 있었다. 탄생지인 경산(慶山), 자인(慈仁) 일대, 그와 땅꾼들이 사복이라는 기인과 함께했던 덕동 일대, 혜공이란 스님과 수행했다는 영일의 운제산 오어사 일대.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의 진신(眞身)은 없었고 그림자조차 없었으니”(p.148)

 

원효스님은 용산스님에게 수행의 참모습을 일깨워준 분이였으며, 원효스님이 실천하려고 했던 불법의 세계를 용산스님이 원효스님으로 화현(化現)하여 현세(現世)에 펼쳐 보이려고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스님은 충청남도에서 출생, 26세 때 출가, 득도(得度)20년이 넘는 기간을 원효스님처럼 포교활동을 해왔다. 경산에서 처음으로 공덕원(功德院)을 설립한 후, 와촌의 불사(佛事)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에도 공덕원을 설립하였고 해외(海外)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미국 뉴욕, 우즈베크공화국, 카자흐공화국에도 법당과 포교당을 설립하여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포교하는데 전력하였다.

 

필자는 용산스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서 스님이야말로 2의 원효”.“2의 만해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휼륭한 스님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좀 더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스님은 소설 등신불에서 자신의 자전적(自傳的)인 내용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자신이 진정한 불제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왔는가를 보여준다. 스님은 입적(入寂)하기 전에 자신이 간절히 성취하고자 했던 일들을 모두 원만하게 회향(回向)한 것으로 보인다. 스님이 되어서 가문(家門)에 내려진 단명(短命)의 업보(業報)를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이 불문(佛門)에 들어와 부처님과 약속했던 10년 지장기도를 마칠 수 있었으며,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로 19953월에 그토록 원했던 중국 구화산 김교각스님을 친견(親見)하는 일도 이룰 수가 있었다.

 

24세에 왕좌(王座)를 버리고 중국 구화산에서 일생을 마치고 등신불이 되신 김교각 스님, 26세에 출가하여 열반에 들 때까지 지장기도를 하셨던 석용산 스님, 이 두 분의 스님 중 한 분은 신라 때의 왕자(王子)로 또 한 분은 가문(家門)의 장자(長子)로 출생하였다. 두 분 다 불교에 귀의(歸依), 정진(精進)하여 지장보살의 원력(願力)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였다. 교각 스님은 중국에서 존경받는 지장왕(地藏王) 보살로 용산 스님은 현세에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나투신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용산스님은 원효스님으로 부터는 진정한 승려의 구도정신(求道情神)과 무애사상(無碍思想)을 만해스님으로부터는 문학적인 재능(才能)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면을 빌어 두 분 스님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어본다.

 

용산 스님이 1993년에 쓴 여보게, 이 땅에 다시 오려나 그리운 사람 있다면...”이라는 책의 제목(題目)으로 쓴 시()는 그의 사후(死後) 내생(來生)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여기 옮겨 본다.

 

 

여보게, 백년 뒤 이 땅에 누가 남아 노래할까?

솔바람, 풍경소린 남아 있겠지.

여보게, 이 땅에 다시 오려나?

그리운 사람 있다면...

모두가 다 그리운 사람들이야.

백년 뒤 어느 곳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내 뼈는 한줌 흙으로 생명 품은 텃밭 되어 누워 있겠지!

내 살과 피는 한 방울 물이 되어, 산모퉁이 돌다 목마른 이의 가슴 적셔 주겠지!

내 따뜻하던 온기(溫氣)는 한 가닥 햇살 되어, 누군가의 가슴 비춰 주겠지!

내 움직이던 기운 한줌 바람으로, 떠도는 영혼 벗이 되어 있을 거고...

내 혼()은 중생제도의 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도()를 닦고 있겠지!

! 세상은 수백만 생()을 윤회(輪廻)하며 굴러 온 내 살과 뼈와 그리고 기운으로 가득찼네.

그리고 보니 이웃들아!

나는 너희 살을 빌렸고 너희는 나의 뼈를 빌렸으며

우리는 또 다른 이의 기운을 빌렸구나!

너희는 나의 몸이었고 나는 너의 몸이어서

우리는 다겁생(多怯生)을 부모(父母)되고 형제(兄弟)되어 살았으며 또 그렇게 살겠구나!

부는 바람 형제의 숨결이듯 밟는 땅은 아버지 가슴이란다.

흐르는 물 어머니 젖줄이듯 맑은 하늘은 누이 동공(瞳孔)란다.

 

지장보살의 원력이라 할 수 있는 衆生度盡 方證菩提 地獄未空 誓不成佛”-중생을 제도하고 보리를 이룰지니 지옥이 비기 전에는 결코 부처되지 않으리-이라는 말처럼 용산스님의 혼()은 이 시()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또 다른 몸으로 화현(化現)하여 중생제도를 하고 계시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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