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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과 인간

-류시화의 인도기행을 읽고

by 운제산 구름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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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인도기행을 읽고

 

시인이자 번역가인 류시화가 인도 전역을 장장 15년의 기간 동안 드나들면서 체험한 인도기행의 산물(産物)인 두 권의 책을 시절인연이 도래(到來)하여 최근에 읽었다. 지난 1997년에 출간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2002년에 출간한 지구별 여행자이 두 권의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인도에서 체험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담하고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2008년에 전자는 초판 발행 후, 75쇄 발행을 했으며, 후자는 83쇄 발행을 했다는 사실에서 이 책들이 많은 독자들의 구매로 인해 소위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991년에 초판으로 출판한 그의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늘 내 마음 속에서 못 견디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어디론가 떠나라는 것이었다. 강물이 흐르는 것만 봐도 그 멀리까지 가고 싶었다. 떠돌아다녀 보지 않은 사람이 삶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p.52)

 

또한 아버지의 인생상자라는 글에서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유품(遺品)으로 남겨둔 상자에서 아버지가 생전(生前)에 여행하면서 찍어둔 사진들을 보게 되었는데, 이 사진들은 그에게 이국적(異國的)인 외부세계에 대한 최초의 만남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사진들은 모두 아버지가 여행하면서 찍은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스무 살 무렵에 집을 도망쳐서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는 혼자서 온갖 일을 하며 동남아 일대를 돌아다닌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얼굴들이 아버지의 여행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필리핀 어부들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일본 술집 기생의 인형 같은 묘한 얼굴이 있고, 발가벗은 인도네시아 원주민 아이들과 정장한 군인의 얼굴도 있었다. 바다와 화산과 고원지대가 있었다. 월남 승려들도 있었다.(같은 책, p.45)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가 어디론가 항상 떠나고자 했던 충동도 자신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했던 여행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 좋았고, 실제로 그는 가끔 집을 떠나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어머니도 그러한 나의 습성을 고치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역마살이 끼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 그 점에서만은 나는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같은 책, p.53)

 

그가 처음으로 인도에 대한 동경을 가진 것은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갈망했던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본격적(本格的)으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 재학 당시의 심정(心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에 들어간 나는 갑자기 이 세상이 상자 속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상자 속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그러한 순간들을 만난다. 사람들이 살면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지만, 반면에 매순간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것은 이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같은 책, p.56)

 

이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 가운데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지로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때 내가 왜 인도라는 나라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 나라에 대해 소위 마하트마 간디밖에는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인도라는 나라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곳에는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숨막히게 하지 않는 드넓은 지평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동은 이미 여러 전생으로부터 심어진 어떤 씨앗이 안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같은 책, p.75)

 

또한 그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속의 한 글에서 자신의 전생(前生)은 인도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여행 중에 올드 델리 거리에서의 전생체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 모든 힌두어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누가 가르쳐준 것처럼 생생히 그 이름들이 생각났다. 만일 누군가 내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힌두어 문장이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주위에서 인도인들이 쓰고 있는 언어가 외국어가 아니라 마치 내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모국어처럼 들렸다. 더구나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거리 풍경은 이전에 틀림없이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흰 옷에 흰 두건에 흰 콧수염을 한 고집센 관리, 주렁주렁 축제용 금잔화 꽃목걸이를 파는 아주머니, 물통을 손에 들고 철둑길로 똥 누러 가는 아저씨, 우유통을 머리에 이고 가는 가난한 처녀.....분명히 이 장면과 이 냄새와 이 소음속에 나는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있었다.(하늘 호수를 떠난 여행, p.190)

 

그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더없이 넓은 인도 전역을 배낭하나를 매고 기차나 버스를 타기도 하고 직접 걸으면서 현지인들을 만난 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잠을 잘 때도 비싼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싸구려 여인숙이나 민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는 인도인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해 놓은 <인디아 어록>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지구별 여행자에 수록한 <사두 어록>이다. 전자는 그가 여행 중에 만난 수많은 인도인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이 그에게 말해 준 인상적인 말들을 모은 것이고, 후자는 인도의 탁발 고행승과의 만남에서 그들이 그에게 말해준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인디아 어록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수첩에 <인디아 어록> 코너를 만들어 그것들을 기록해두곤 했다. 인도인들은 짤막한 말로 사물의 핵심을 잘 찌르는 것으로 유명하며, 나 역시 그 말들을 듣고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에서, 기차 안에서, 또는 버스 지붕 위에서 대중 속의 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재치 있는 순발력과 번뜩이는 통찰력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여행길을 자꾸만 인도로 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어록들이었다.(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p.211)

 

무수한 인도인들 중에서 그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고 만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인도의 탁발 고행승인 사두들과의 만남이었다. 인도 전역에 흩어져 정신적(精神的) 진리(眞理)를 추구하는 이들 사두들의 모습을 <사두 어록>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도는 명실공히 사두들의 나라. 신들의 시대부터 아대륙 인도에는 사두들이 있어 왔다. 오렌지색 승복을 입고 긴 장발머리를 늘어뜨린 이들은 흔히 탁발 고행승이라 불리지만, 다른 종교의 어떤 수도승과도 다르다. 이들은 절대로 이를 닦지 않으며, 도시 한복판에서도 벌거벗고 다니기를 서슴치 않는다. 입만 열면 마음의 평화를 구가하고, 진정한 진리를 찾아 끝없이 여행한다.(지구별 여행자, p.236)

 

이 무전취식, 무소불위의 방랑자들은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얼굴에 성스런 재를 바르며, 아무 데서나 누워 잔다. 인류가 달나라에 도착해도 무관심하며, 세속적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인도땅에서 아직도 소똥으로 밥을 끓여먹으면서도 더없이 만족해 한다. 추위를 견디는 데도 이골이 나서, 히말라야 눈 속에 벌거벗고 앉아서도 내면의 불로 자신을 덥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같은 책, p.237)

 

 

이 어록에서는 사두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삶에 대한 참된 가르침과 함께 그들의 진면목(眞面目)을 볼 수 있는데, 사두들의 말은 언제나 재치 있고, 엉뚱하고, 정곡을 찌르기를 서슴치 않으며, ()과 진리(眞理)에 대한 지혜로 가득한 영혼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도 여행을 굿모닝 인디아라는 글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밤을 지나보내고, 여인숙 문을 나서면 어디나 인도였다. 벌써부터 경적을 울려대는 릭샤와 소떼와 해변으로 똥누러 가는 인도인들에게 나는 큰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p.208)

 

류시화 만큼 인도 여행을 자주한 이도 없을 것이다.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인도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한 것은 그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전생이 인도인이었다고 할 정도로 인도를 사랑하였고, 인도 현지를 10년이 넘는 기간을 매년 방문하였으며, 이러한 여행의 체험을 두 권의 여행기로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인도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이 두 권의 인도 여행기를 읽으면서 인도에 대한 작가의 해박(該博)한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 인도인들의 문화, 전통, 생활 습관 등을 접하면서 간접 체험하였다. 시절인연이 오면 나도 인도에 가서 인도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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