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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숲의 미덕(美德)

by 운제산 구름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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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열매와 단풍

 

숲의 미덕(美德)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학교는 해발 100m정도의 낮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를 둘러봐도 울창한 산림이 나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러나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학교 앞을 지나 동해안의 울진 으로 이어지는 4차선의 국도를 질주하는 차량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음 이다. 이것만 제외한다면 학교의 주변 환경은 깨끗하고 쾌적할 뿐만 아 니라 전망 또한 더없이 좋다. 내 연구실의 창문에서 동남쪽으로는 눈을 돌리면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이 길게 능선을 이루며 병풍을 둘러친 것 같고, 그 산들 사이로 형산강(兄山江)은 유유히 흘러 동해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반대편의 북서쪽은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가 학교에 들어올 때마다 절간을 찾을 때 처럼 마음이 절로 맑고 고요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산들 때문이리라. 내가 산 속에 살고 있으니 계절의 변화도 산을 보며 느낀다. 찬바람에 겁을 먹고 굳게 닫아 두었던 창문을 불현듯 열고 싶을 때면 어느덧 빈 나뭇가지에는 연초록의 새싹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겨울은 삭풍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매섭게 새싹을 몰아붙이고, 나는 선뜻 창문을 열어젖히지 못한다. 그럴 때면 힘들게 서있는 나무들을 보기가 왠지 부끄러워 창문을 외면하곤 한다. 그러나 산 곳곳에 진달래며 산벚꽃 무리가 수줍게 연분홍 얼굴을 내밀 때면 나도 창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맞아들인다. 봄은 그렇게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아카시아와 밤나무꽃의 짙은 향기를 뿌리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어느날 자지러질 듯한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서 창 밖을 내다보면 초입에 들어선 여 름은 나무들에게 짙은 녹색의 옷을 입히고 내게는 옷소매를 반쯤 걷어 놓는다. 뜨거운 여름의 기운은 학생들을 산과 바다로 몰아내고 캠퍼스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고요하다. 그러다 구슬픈 산비둘기 울음이 들 릴 때면 잎 넓은 낙엽수에는 물감을 뿌려놓은 듯 화려한 치장을 하고 나 의 시선을 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오히려 고독을 느낀다. 아마도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나는 온 몸을 휘감고 도 는 고독을 막아내기라도 하듯 슬그머니 창문을 닫으며 다시 올 봄을 생 각한다. 수필가 한흑구(1909~1979)선생은 그의 수필집 『보리』에서 “나무”라 는 제목으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성자(聖者)와 같은 나무. 아름다운 여인과 같은 나무. 끝없는 사랑을 지닌 어머니의 품과 같은 나무. 묵상하는 시인(詩人)과 같은 나무.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나는 언제나 나무를 사랑한다. (1946년)

 

나는 산 속에 살기에 선생의 말처럼 매일 성자를 대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며 어머니의 품속에 안기어 묵상하는 시인이 된다. 그래서 숲은 내 행복의 근원이다. 그러나 숲이 어찌 내게만 행복을 가져다주겠는가. 숲이 내쉬는 호흡은 우리의 폐와 뇌를 맑게 해주는 신선한 공기이고, 그들의 머금은 물기는 사시사철 가뭄을 모르는 물을 제공하며, 드리운 사지는 무더운 여름날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된다. 그러나 숲의 혜택이 어찌 이런 물질적인 것뿐이랴. 언제나 그 자리 그 곳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을 틔워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 닥치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어느 성자의 가르침만큼이나 묵직하게 내 가슴속에 자리 잡는다. 얼마 전 시사 주간지인 “TIME”에 도로개설의 이유로 아마존의 열대 우림이 파헤쳐져 붉은 속살을 드러낸 사진과 기사를 보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내 가슴이 파헤친 것처럼 섬뜩했다. 우리는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우리의 허파라고 곧잘 말들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허파를 도려내는 아픔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짓인가?  허나 그 어리석음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국토의 70%가 산림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 내가 다니는 길가의 야산들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삶이 서글퍼지는 지는 것은 감정의 사치 때문일까? 숲을 훼손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데는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 요하다. 순간의 쾌락이 육신을 파멸시키는 마약처럼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지금 숲을 바라보고 있다. 숲은 내게 말한다, 그대의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라고. 나는 할 말을 잃고 바보 처럼 눈만 끔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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