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일만의 파도소리

-손춘익(孫春翼) 선생님(1940-2000)을 그리며

by 운제산 구름 2023. 12. 11.
728x90
SMALL

영일만의 바다

 

 

-손춘익(孫春翼) 선생님(1940-2000)을 그리며

 

 

2005년은 아동문학가이며 소설가였던 손춘익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떠난지 5주기가 되는 해이다. 선생님께서는 1940년 포항에서 출생하셨고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하시면서 창작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은 선생님께서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선생님의 외모는 특별한 데가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얼굴은 항상 미소를 머금은 동안(童顔)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지녔고 신장은 160cm을 전, 후 정도로 비교적 적은 듯했다.

선생님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재학중 3학년 2학기때로 기억되는데 나는 공군사관학교에 특차지원을 하여 필기 시험에 합격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선생님께서는 나를 교무실로 호출하였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학교신문편집을 책임지고 계셨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강군, 공사에 1차 합격되었으니 합격 소감문을 써오도록 하게

글을 써오라는 갑작스런 선생님의 요구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선생님께서는 자상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강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자네가 시험준비를 위해 어떻게 공부했는가 하는 내용을 솔직하게 적으면 될 것이야

나는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합격 소감문을 썼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 후 졸업을 하면서 나는 대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그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틈틈이 집필한 작품을 통하여 선생님이 건강하게 잘 계시고 있음을 멀리서 나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에 그동안 앓아오던 지병으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찾아뵙지를 못한 내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동화작가로서의 길을 먼저 걷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을 비교적 불행하게 보냈다. 이러한 모습들을 동화라는 그릇에다 옮김으로서 한때 암울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이 동화를 쓰게된 계기는 동해안 축산항에 있는 조그만 초등학교에 재직할 때였다. 당시 부족한 교사들을 충당하기위해 국가에서 임시방편으로 실시한 초등교원 채용고시에 합격한 것이였다. 선생님이 쓴 나의 길이란 글에는 이 때의 심정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그곳에서 반년 남짓 갯가 아이들 속에 묻혀 지냈다. 바닷가의 자취방에는 밤마다 파도소리가 바람처럼 밀려들었다. 꿈결에도 들려오는 그 가엾은 흐느낌에 문득 잠이 깨면 깊은 새벽녘이었고, 나는 까닭없는 그리움에 눈물이 복받쳤다. 무엇인가 애타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 아득한 그리움의 정체는 바이 알 길이 없으나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어느 한 길로 이끌어준 운명의 손길이었다고 믿어진다. 아마 외롭고 고달픈 삶을 거쳐오는 동안 내 안 깊숙이 도사린 비애의 발로일까. 나는 그 새벽에 동화를 썼다. 흐르는 눈물만큼 절실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 영혼은 그지없이 맑고 순수했다. 나는 몇 편의 동화를 쓴 뒤 그곳을 떠났다. 도로 포항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동화를 쓰게 된 것은 축산항으로 가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러나 사실은 서산밑 시절의 앙금이 더 본능적인 동기인지도 모른다. 어린이야말로 진정 맑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인 염무웅은 민중현실과 역사의식이라는 글에서 아동문학가로써의 손춘익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동문학가에서 차지하는 손춘익의 위치는 남다른 바 있다. 이미 일제시대부터 활동하여 대가의 반열에 올랐던 윤석중, 마해송, 이원수같은 분들이 작고하거나 현역에서 물러난 다음 그들을 이을 굵은 재목이 얼핏 눈에 띄지 않은 터에 30년 가까운 경력과 수십권의 저서를 가진 손춘익은 이제 동화작가로서 중견의 지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66년에 조선일보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쓰는 일에 매진하여 수십권의 동화집을 출판하였다. 이 당시 동화작가로서의 선생님의 업적을 알아보면 72년에는 세종아동문학상, 81년에는 소천아동문학상, 82년에는 경북문화상, 그리고 90년에는 춘강문예창작기금상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77년에 방영감의 죄창작과 비평에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 등장하였고, 90년에는 소설집 작은 톱니바퀴의 연가를 간행함으로써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자신의 첫 소설집의 머리말에서 동화와 소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말하고 있다.

 

동화와 소설은 워낙 그릇이 다르다. 동화가 환상을 추구하는 동심의 문학이라면 소설은 팍팍한 현장의 문학이 아닐까. 따라서 동화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는 사연들이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소설가로서의 손춘익을 염무웅은 그의 글 민중현실과 역사의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런데 70년 중반쯤부터 손춘익은 띄엄띄엄 소설쓰는 일에 손대기 시작했다. 친구인 이문구룰 앞세우고 창작과 비평사 편집실에 나타난 그를 내가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차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잠시도 한가하게 쉬지 못하는 성품이다.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시거나 등산을 하거나 요란하게 떠들거나, 요컨대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같은 글에서 염무웅은 손춘익 소설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작가 손춘익의 시선은 고집스러울만큼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권력과 금력의 횡포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생활 현장이며 경제개발에 의해 붕괴되어가는 공동사회의 전통적 가치이다. 우리는 그의 일관된 자세와 한결같은 문제의식이 오늘의 문단적 세태에 비추어 실로 보배로운 것임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단선적이고 유형적인 인간 파악을 넘어서는 삶의 역동적 구체화를 이룰 때 그의 문학이 좀 더 높고 강렬한 예술적 성취에 이를 것으로 믿는다.”

 

이처럼 선생님께서는 동화와 소설쓰기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셨다. 그리고 언제나 고향에 계시면서 영일만과 포항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다. 좀 더 오래 우리곁에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2005년 가을에는 생전에 선생님께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셨던 포항문인협회에서 손춘익선생님의 업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환호동 해맞이 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고향에서 태어나 구수한 고향의 방언으로 주옥같이 많은 동화와 소설을 창작하신 선생님, 그리고 항상 따뜻한 미소로서 제자들을 맞아주시던 선생님, 비록 지금은 고인의 몸이 되셨지만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많은 분들이 선생님께서 이생에서 다하지 못했던 일을 꼭 이룰 것입니다.

지난 시절의 아픈 기억들은 이제 다 떨쳐버리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시기 이 못난 제자 엎드려 빕니다. 

 

-2005108일에 하정 손춘익 선생 문학비 제막식이 포항시 북구 환호동 해맞이 공원에서 있었다. 지금 이 문학비는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학비 전면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글이 새겨져있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쉽게 사라지는 것

하지만 오늘 하루 이 아름답고

황홀한 꽃한송이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어준 보석들은 영원히 반짝이고

있을 것을

우리는 믿어도 좋은 것입니다.

동화 꽃피는 얼굴중에서

 

 

 

그리고 문학비 후면에는 손춘익선생을 추모하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글이 적혀있다.

 

 

 

 

하정 손춘익은 1940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1966년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평생 고향땅을 지키면서 천사와 꼽추”, “이상한 손님들”, “어린 떠돌이등 많은 동화집과 소년 소설을 발표하여 중견의 지위를 굳혔고, 1974년 단편 죽음의 길발표를 계기로 활동 영역을 소설에 까지 확장하여 작은 톱니바퀴의 연가”, “이런 세상”, “추억 가까이등 주목 받는 단편집과 장편소설을 간행하였다.

 

손춘익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각고의 노력끝에 역경을 극복하고 이처럼 문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마치 부지런한 농부가 삽자루를 들고 논밭으로 나가듯 그는 매일 새벽 원고지 앞에 앉아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이야기를 짓고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으니 다만 갑년을 미쳐 못 채운 그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선비정신과 민중의식이 팽팽히 교차하는 그의 문학세계는 그가 창간을 주도한 지역문예지 포항문학과 더불어 영원히 향기로울 것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