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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자옥산(紫玉山)을 오르며

by 운제산 구름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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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꽃

 

 

-자옥산(紫玉山)을 오르며

 

경북 경주시 안강읍 외곽에 있는 자옥산은 해발 563m의 산으로 북쪽에 위치한 706m의 도덕산 보다는 높이가 낮은 산이다. 멀리서 이 두 산을 바라보면 다정한 형제(兄弟)처럼 나란히 어깨를 서로 기대고 있는 정겨운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처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두 산은 쉽게 그 정상(頂上)을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는 등산로 초입부터 정상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가파른 능선 때문이다. 산행을 하면서 언제나 내가 느끼는 점은 오르막 능선은 등반(登攀)하기가 힘이 든다는 점인데, 한편으로는 그 만큼 힘이 들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힘들게 숨을 내쉬면서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혹자(或者)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신들은 왜 힘들게 등산(登山)을 합니까?”

이 물음에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산이 우리 곁에 있기에 우리는 산을 오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이야말로 참으로 진실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우리들은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말은 높은 산을 오르는 일과 인생살이는 그 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살아가면서 온갖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경험을 겪게 되는데, 때로는 시련과 좌절, 성공과 실패 등을 되풀이하면서 울기도하고, 웃기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나머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은 또한 얼마나 값진 것인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숨을 몰아쉬면서 정상에 오른 사람들만이 진실로 가슴 벅찬 환희(歡喜)를 누릴 수가 있다.

 

내가 자옥산으로 오르는 산행길은 세심(洗心) 마을에 있는 산장식당 뒷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稜線)으로 곧장 오르게 되며 등산로 초입부터 3부 능선까지는 낮은 소나무 군락(群落)을 먼저 만나게 된다. 좁은 산행 길 좌, 우측에 밀집되어 있는 소나무 숲 사이를 걸어가게 되는데 이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잎향기는 각종 공해에 찌든 우리들에게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소나무군락을 지나 능선 중, 상부까지 이어지는 길은 상수리나무들이 집단적으로 자생(自生)하는 곳으로 지난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으로 치장했던 잎들이 모두 지면에 떨어져 발걸음 닿는 곳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어 바닥이 스폰지(sponge)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 마다 발밑에 느껴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이 낙엽들은 내년 봄에 새로운 싹을 자라게 하는 자양분(滋養分)이 되는 것이다. 산에 자생하는 모든 초목(草木)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재활용하고 있는데, 나무와 잎이 수명을 다하면 지면에 있는 흙과 함께 퇴비로 변해 살아있는 초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처럼 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나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順應)하면서 살아간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따라 숨을 몰아쉬면서 줄곧 오르다보면 능선 8부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부터는 갖가지 모습을 한 바위 지대를 지나게 되는데, 특히 정상을 오르기 직전에 있는 암석들은 바위로 쌓아 놓은 성()을 연상하게 한다. 이 암석들은 정상으로 이르는 길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정상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守護神)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한 바위들은 산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더없이 좋은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바위에 앉아 산 아래의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되고 있다. 암석 지대를 통과한 후 도달하게 되는 능선 9부에서 정상까지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힘든 능선을 오를 때 느꼈던 숨소리가 안정을 찾는다.

 

 

정상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가까이는 더 없이 넓은 안강 평야(平野)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는 검푸른 영일만과 포항제철공장의 굴뚝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리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높은 도덕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동쪽에는 길게 능선을 이루고 있는 화개산이 눈앞에 펼쳐져 너무나 보기가 좋다. 화개산 중턱을 따라 길게 조성된 임도(林道)는 기계 마을까지 10km가 넘게 이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거대한 뱀이 꿈틀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자옥산 정상에서 내 발 아래에 펼쳐져 있는 세심마을을 비롯하여 안강읍과 저 멀리 보이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옥산서원 뒤편 계곡 사이에 있는 옥산저수지의 푸른 물을 바라다보면 마음이 더없이 평온(平穩)해 진다.

 

자옥산 정상에는 산을 좋아하는 동호인(同好人)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둥근 돌탑이 2-3m의 높이로 자리하고 있어 이 곳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으며, 이 돌탑 곁에는 자옥산 정상임을 나타내 주는 표석(表石)이 세워져 있다. 나는 이 돌탑과 표석을 보면서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착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에 자옥산 정상에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석양(夕陽)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언젠가는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하게 될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지만, 힘들게 땀 흘리면서 정상(頂上)에 오른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아 있다는 내 자신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는 내 가까이에 있는 산들을 오르면서 언제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깨닫게 해주는 산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산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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