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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초례봉 산행기(山行記)

by 운제산 구름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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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례봉 산행기(山行記)

 

평소 포항에서 경산을 오가면서 꼭 오르고 싶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의 이름은 바로 초례봉인데, 이 봉()은 팔공산(八空山)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온 능선(稜線)에 위치해 있으며 인접해 있는 낙타봉과 환성산(環城山)으로 이어진다. 이 봉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촛대처럼 우뚝 솟아있다 하여 보통 촛대봉이라고 불리어 진다고 한다. 이 봉은 해발 635m이며 인접에 있는 낙타봉은 해발 656m로 비교적 높은 봉이다. 특히 낙타봉은 3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흡사 낙타(駱駝)등을 닮았다는데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한다. 오늘 시절인연이 도래(到來)하여 내가 그토록 올라보고 싶었던 초례봉 산행을 대학교 동문(同門)K선생의 안내로 함께 오르게 되었다.

 

경산 쪽에 서서 눈길을 금호강 쪽으로 향하면, 더없이 넓은 하양, 진량 들판 뒤쪽으로 동서로 길게 이어진 검은 산맥을 볼 수 있는데, 이 산들이 바로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이다. 이 능선 중심부에 위치한 봉이 낙타봉이고, 이 봉 뒤로 보이는 높은 산이 바로 해발 811m의 환성산이 웅장(雄壯)한 자태(姿態)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낙타봉 우측에 있는 봉이 바로 K선생과 함께 오르기로 한 초례봉이다. 그는 참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오늘 나를 위해 이렇게 산행안내자로 나선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높은 산은 거의 등정(登頂)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보통의 체구(體軀)를 지니고 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다닌 산행으로 다져진 다부진 신체(身體)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얼굴에 가벼운 미소(微笑)를 띠고 있는 그를 좋아한다. 그는 항상 예의 바르며 겸손(謙遜)하다. 그리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은 험준(險峻)한 수많은 산을 오르면서 체득(體得)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초례봉으로 등산하기 위해서는 하양(河陽)에서 가는 방법과 반야월(半夜月)에서 가는 두 가지의 산행길이 있다고 K선생이 말해 주었다. 하양에서 오르는 길은 반야월에서 오르는 길보다 훨씬 힘들다고 해서 우리는 반야월 쪽으로 택하기로 하였다. 아마도 그는 이번 산행(山行)의 초심자(初心者)인 나를 생각해서 좀 더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을 결정한 것이다. 하양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국도(國道)를 따라가다 반야월역을 지나면 곧 쌍룡시멘트공장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공장 입구에서 우회전을 하면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매여동으로 들어가는 초입(初入)이다.

 

매여동으로 가는 길 좌, 우측에는 과수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 4월에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복사나무에는 제법 굵어진 복숭아들이 달려 있고, 특히 노란 황금빛을 한 살구들이 가지마다 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가 좋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국도변에서 매여동 마을까지는 대략 4km 정도이며, 마을로 가까이 갈수록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 마을의 모습이 펼쳐졌다. 진입(進入) 도로 양쪽에는 울창한 수목(樹木)으로 우거진 산들이 자리하여 청정한 공기를 내뿜어 주고 있었고, 계곡(溪谷)에는 깊은 숲에서 발원(發源)한 것으로 보이는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매여동 버스 주차장에는 여기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그늘진 정자(亭子) 아래에 앉아서 손수 키운 오이며, 상추, 우엉, 깻잎, 머구줄기, 그리고 막 수확한 매실(梅實)등을 팔기위해 자리를 잡고 등산객들에게 하산(下山)할 때 꼭 사가라고 당부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제 말기 시대적인 고난과 절망을 불멸의 생명력으로 극복하려 한 청록파(靑鹿派) 시인(詩人)중의 한 사람인 박두진(1916-1998)님의 시()중에 산을 노래한 향현”(香峴)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의 시구(詩句)가 너무 좋아 여기 옮겨본다.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엇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 ,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沈黙)이 흠뻑 지리함 즉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기다려도 좋으랴?

(청록집 p.49)

 

시인의 말대로 진정 산의 주인은 우리네 사람들이 아니다. 산속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수많은 날짐승, 들짐승들의 안식처(安息處)인 것이다. 산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그 나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나는 요즈음 개발(開發)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산을 훼손(毁損)하는 것을 보면 내 몸에 상처를 내는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아프다. 산은 무수한 생명체(生命體)들이 살아가고 있는 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K선생의 안내로 초례봉 산행을 시작했는데, 처음 오르는 나로서는 무척 힘이 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은 나로 하여금 숨을 몰아쉬게 했으며, 힘이 부칠 때마다 자주 쉬어야 했다. 매여동에서 오르는 길은 하양 쪽에서 오르는 길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그가 말해 주었지만, 초행(初行)의 나는 마냥 힘들기만 하였다. 2-3부 능선 좌우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여기, 저기에 집단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5월에 왔더라면 아카시아 꽃과 향기를 누릴 수 있었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일어났다. 6월 중순이 지난 지금은 산 곳곳에 자리한 밤나무들이 노랗고 긴 꽃을 피워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고, 숲속 깊은 곳에서는 뻐꾸기, 휘파람새들이 그 특유의 아름다운 소리로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4-8부 능선에는 상수리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어 산행을 한결 편하게 해 주었다. 더구나 키 큰 소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여기서 풍겨 나오는 솔잎향내가 지친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정상 가까운 9부 능선에는 정상을 호위(護衛)하고 있는 형상(形象)을 한 바위들이 원형(圓形)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정상에는 내가 K선생으로부터 들었던 것처럼 큰 네모형의 바위가 촛대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 바위가 수, 만년의 세월동안 거친 바람과 매서운 눈보라에도 전혀 동요(動搖)함이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숙연(肅然)해 졌다. 비록 무생물(無生物)의 바위이긴 하지만 이렇게 변함없이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바위가 존경스럽기 까지 했다. 여기서 四方(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산, , 산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여기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낙타봉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이 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때마침 피어난 싸리꽃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따라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대는 강한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처음 가는 낙타봉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람 키를 훨씬 넘어 자라난 억새풀을 헤쳐 나가면서 계속 전진(前進)하였다. 초례봉을 출발한지 30여분의 시간이 지나면서 드디어 낙타봉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여기에 올라왔다는 증표(證票)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환성산까지 등반하기로 다짐을 하면서 오늘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 번 산행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랫동안 미루어 놓았던 숙제를 일시에 다 해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산(下山)하여 버스주차장에 도착하니 할머니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각종 야채를 팔고 계셨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할머니들의 수고를 들어주기 위해 상추와 오이, 깻잎, 그리고 우엉잎을 조금씩 샀다. 오늘 K선생과 함께한 초례봉 산행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청록집(靑鹿集);일제 말기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세 시인이 광복직후인 1946년에 펴낸 3인 공동시집이다. 시집의 이름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왔는데, 이 시집출간이후 이들 세 시인은 문단에서 청록파라 불리게 된다.

 

-K선생은 필자의 대학후배로 모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강의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등산을 즐겨하며 산악자전거(MTB)를 타는 데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 그는 참으로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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