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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시골 초등학교에서

by 운제산 구름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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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에서

 

 

무더운 8월 초순이다.

지난 7월은 연일 장맛비가 계속 이어져 전국이 수해(水害)로 인한 큰 피해를 입었다. 한 달 동안에 내린 비의 양이 1년동안 내릴 강수량을 초과하였다는 기상청의 보도가 있기도 하였다. 하여간 이 엄청난 폭우로 인하여 강원도 지역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 그 피해가 가장 심했는데 주택이나 전답, 축사, 농경지뿐만이 아니라 귀중한 사람의 생명까지도 한 순간에 쓸어가 버렸다. 그런데 지금의 날씨는 어떤가? 언제 비가 내렸던가 할 정도로 무더운 더위가 전국을 뒤덮고 있어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며 밤에는 25도가 넘는 열대야(熱帶夜)야라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은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평양건너에 있는 미국은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거의 모든 주에서 폭염(暴炎)으로 인한 탈수, 일사병으로 인해 죽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가 있으며, 유럽 지역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반면 동아시아지역인 필리핀, 중국, 일본, 한국등의 국가들은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의 영향으로 홍수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상재난은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말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연파괴를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즉 자동차의 증가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 일부지역에 이루어지고 있는 열대우림의 파괴등을 예로 들고 있다. 우리네 주변에서도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앞세워 마구 귀중한 삼림(森林)이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숲과 나무의 남벌(濫伐)은 이번 수해현장에서도 보았듯이 홍수와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말로만 자연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 보호를 실천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집안에 있으니 덮고 답답하기도 하여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시골초등학교에 들어가 보았다. 운동장 한쪽 구석에는 두 그루의 노목(老木)이 된 플라타너스가 무성한 그 넓은 녹색의 잎으로 따가운 햇살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드리어주고 있고, 울타리를 따라 키 큰 은행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가 하면, 교사(校舍)로부터 서쪽 방향에는 50년이상이나 됨직한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었고, 더구나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수령(樹齡) 200년이 넘어 보이는 히말라아시다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있어 학교의 수호신(守護神)처럼 보였다. 그리고 울타리밖 낮은 언덕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어 짙은 녹색의 잎들이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방학으로 학생들이 떠난 텅빈 운동장에는 은빛 햇살과 간간이 불어오는 무더운 여름 바람이 학생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 보였고, 또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교정(校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그만 시골의 초등학교 교정 한쪽 구석 그늘진 곳에 앉아 있으니, 지난 시절의 어린 내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6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는 모두가 가난에 힘들었던 때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는 짧은 까까머리였으며, 신발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자기에다 책을 넣어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대략 한 2km정도로 걸어서 다녔다. 지금의 서산밑으로 나있는 철길을 따라 학교를 오고갔다. 그 당시 어린 시절에는 철길이 얼마나 멀어보였던지? 어른이 된 지금 그 철길을 보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상념(想念)에 젖어 있을 때, 이 학교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분이 큰 수박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방학중에 숙직하고 있는 동료 교사를 위해 수박파티라도 하려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수박만큼 더 좋은 과일이 또 있을까? 얼음물에 채운 잘익은 수박을 잘라 먹는 생각을 하니 일순간에 더위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복(末伏)이 멀지 않았으니 이 더위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지루하게 계속된 장맛비가 끝난 것처럼, 그리고 곧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황금벌판이 넘실대고,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뒷산 밤나무에는 알밤이 가득하고, 과수원에는 붉은 사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그런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다가올 가을 생각하니 이 무더위가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한다고. 당연히 맞는 말이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벼를 영글게하고 수많은 과일들을 단단하게 익게 하지 않는가. 모든 천지만물은 태양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성장할 수 가 없다. 나는 오늘 조그만 초등학교 교정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이 서있는 소나무, 플라타너스, 히말라야시다 그리고 은행나무 등을 보면서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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