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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기행

-프놈펜(Phnom Penh)에서 만난 불자수첩(佛子手帖)

by 운제산 구름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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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Phnom Penh)에서 만난 불자수첩(佛子手帖)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부류(部類)의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특별한 인연(因緣)을 맺기도 한다. 예컨대, 부부(夫婦)로서 일생을 함께하는 배우자와의 만남을 비롯하여 학창시절에 만나는 동문(同門), 같은 고향에서 살면서 만나는 죽마고우(竹馬故友),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 등 일일이 열거(列擧)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만남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교제(交際)하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불자수첩을 만나게 된 인연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것이 낯설었던 타국(他國)에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이 수첩과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나는 시절인연으로 동남아에 있는 캄보디아에서 체류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5시간 20분의 비행으로 도착한 곳이 태국의 방콕국제공항이었다. 여기서 다시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정도를 가야했다.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편이 자주 없어 2시간 넘게 방콕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마침내 프놈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나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모습들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도로 주변의 각종 집들, 무더운 열대지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열대 식물들과 나무들이 이국적인 경치를 연출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 심어둔 짙은 녹색의 가로수와 도로 중앙에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늙은 고목나무에 핀 흰색의 꽃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더구나 넓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동차며 수많은 오토바이들,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 모습에서 현지인들의 분주한 일상생활을 엿 볼 수 있었다.

 

프놈펜에서 생활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특히 불자수첩과의 만남은 잊을 수가 없다. 현지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 2-3개월 동안은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먹는 음식에서부터 열대지방의 무더운 날씨, 그리고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문제 등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때였다. 그래서 그 당시는 시내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이 숙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무렵에 나에게 커다란 정신적 위안(慰安)을 준 것이 바로 조그만 우리말 불자수첩이었는데, 이 불서(佛書)와의 만남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사무실에 있는 책장(冊欌) 깊숙한 곳에서 뽀얀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책자(冊子) 한 권을 발견하였다. 누가, 언제, 여기에 가져다 놓은 것인지는 몰라도 먼지를 틀어내고 표지를 보니 불자수첩이라는 서명(書名)이 보였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954월에 발행된 날짜가 적혀 있었고, 신심(信心)깊은 불자에 의해 법보시(法布施)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이 책과의 소중한 첫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 나는 이 책을 내 방에 가져다 놓고 틈틈이 읽었던 것이다. 매일 일과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한 뒤, 잠들기 전에 나는 이 불서를 꺼내놓고 일체 중생(衆生)의 삼계도사(三界導師)이며 사생자부(四生慈父)인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각종 게송(偈頌)을 비롯하여 반야심경(般若心經), 금강경(金剛經)등을 독송(讀誦)하면서 무더운 열대의 밤을 맞이하곤 했었다.

 

 

요컨대, 이 불자수첩을 만난 인연으로 내가 힘든 해외생활을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 책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 머나먼 타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우리말 불서를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어준 이 책을 만나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불자(佛子)로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생소(生疎)하기만 했던 이국적인 환경에서 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부처님의 계시(啓示)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가 캄보디아에서 아무런 장애(障碍) 없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살펴 준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加被)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 만난 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 경전(經典)을 곁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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