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제산(雲梯山) 오어사(吾魚寺) 그리고 오어지(吾魚池)
신라(新羅)시대이래로 운제산 자락에 터를 잡은 천년 고찰(古刹) 오어사는 나의 선친(先親)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은 다름아닌 선친께서 어린 나이로 스님이 되기 위해 바로 이 곳 오어사로 출가(出家)한 큰 인연이다. 출가를 결심한 선친께서는 오어사로부터 40km정도 떨어져 있는 고향인 영일군 동해면 마산리에서 나의 조모님, 삼촌과 이별하고 이 사찰까지 왔었다. 당시 출가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 먼 거리를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아가신 조모님께서 생전(生前)에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있다. 나의 조부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장남(長男)인 선친께서 생계(生計)를 책임지는 가장(家長)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친의 고향인 마산리는 조그만 어촌(漁村)이었다. 선친께서는 고기를 잡기위해 어선을 타는 일부터 시작하여, 마을 근처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밭을 일구어 곡식을 심기도 하였고, 가을에는 감을 따서 팔기도 하였다. 아무리 힘들고, 궂은 일이라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일념(一念)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친께서 도모한 모든 일들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일을 할 때마다 몸을 다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자식의 이러한 모습을 곁에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지켜본 조모님은 답답한 마음에 주변에서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가 아들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묻게 되었다. 선친의 생년월일을 들은 무속인은 뜻밖의 말을 하였다. 즉 선친은 스님이 될 팔자를 타고났다는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 후 아들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고 계셨던 조모님은 어느 날 아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가 몸을 다쳐 불구자(不具者)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불가(佛家)에 입문하여 불제자(佛弟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
어린 나이에 어머니로부터 불교에 귀의(歸依)하라는 뜻밖의 말을 들은 선친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그 후 선친께서는 아마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 많은 번민(煩悶)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우여곡절(迂餘曲折)의 과정을 거친 후, 어머니의 뜻대로 출가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곧 바로 간단한 짐을 지고 오어사로 발길을 향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춘기에 막 접어든 15살의 선친이 그동안 정들었던 집안 식구들과 고향을 등지고 출가의 길을 선택한 그 심정(心情)은 또 어떠했을까? 아마도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등 만감(萬感)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7월 중순이 막 지난 지금 나는 오어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늘에 앉아서 출가할 당시의 선친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려 보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짙은 녹음과 맑은 계곡물, 더없이 넓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 그리고 여기, 저기 나무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이 넓은 운제산 자락을 변함없이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하여간, 선친께서는 오어사로 출가하여 기림사(祇林寺)에서 정식 스님이 되는 도첩(度牒)을 받은 후, 지난 1986년 12월 세수(歲壽) 67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50년이 넘는 세월을 부처님을 섬기며 지내오셨다. 처음 입산(入山)한 오어사를 비롯하여 월성군에 있는 기림사, 경주의 분황사, 포항의 죽림사, 그리고 선친께서 직접 부지(敷地)를 마련하여 창건(創建)하신 포항시 용흥동 운흥사등에서 수많은 중생(衆生)들에게 바른 불법(佛法)을 전달하기위해 노력하셨다. 내가 소년기, 청년기을 보낸 운흥사는 선친이 지병(持病)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셨던 마지막 사찰이 되었다. 선친께서는 출가후 나의 모친인 월성 김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조계종(曹溪宗) 비구승(比丘僧)으로 계시다가 한국불교정화운동인 법난(法難)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대처승(帶妻僧)으로 승적(僧籍)을 옮기고 태고종단(太古宗團)에 소속되어 계셨다.
오어사와 오어지 주변은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언제나 맑고, 푸른 오어지, 오어사를 감싸고 있는 운제산과 울창한 숲, 원효암(元曉庵)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 폭의 풍경화(風景畵)처럼 빼어난 경치을 자랑하는 자장암(慈藏庵)등이 변함없이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더구나 오어사는 많은 고승(高僧)들이 수행처修行處)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데, 원효(元曉)스님을 비롯하여 자장(慈藏)스님, 원효스님과 서로의 법력(法力)을 시험했다는 혜공(惠公)스님, 그리고 의상(義湘)스님등이 주석(主席)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이 역사깊은 도량(道場)에서 선친께서는 7년의 기간동안(1946.11-1953) 주지(住持)로 계시면서 많은 불사(佛事)를 이루셨다. 오어사 대웅전(大雄殿)은 옛날 그대로인데 지금 선친의 모습은 도량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운제산 오어사 그리고 오어지는 실과 바늘처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수한 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있다. 더구나 천년고찰인 오어사에는 많은 관광객들과 신심(信心)깊은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어지의 맑고, 푸른 물속에는 붉은 빛깔의 잉어와 고개를 비쭉 내밀고 방문객들을 반기는 자라들을 보노라면 평화롭고 아늑한 자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네 인간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때가 되면 이 세상과 사별(死別)하게 된다. 하지만 옛날의 고승(高僧)들은 깨달음을 통한 높은 법력(法力)으로 한결같이 생사(生死)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고 하지 않은가. 원효스님은 치열한 구도(求道) 노력을 통해 “一切無碍人(일체무애인) 一道出生死(일도출생사)” 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원효대사가 환생(還生)하여 운제산 정상에 떠있는 흰구름을 타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나타날 것만 같다
원효암 관음전 중창을 기념하는 표석에는 다음의 글이 새겨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운제산 오어사은 원효대사와 혜공스님의 이적(異蹟)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명찰이며 특히 산내(山內)의 원효암은 우리나라 일천칠백년 불교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성사(聖師)로서 중생계도와 정신문화창달에 지대한 공을 끼친 원효스님께서 좋은 터를 잡아 암자를 창건하고 수도하던 성소(聖所)이다. 원효대사는 신라주민에게는 자모(慈母)와 같은 성자(聖者)였으며 쉬운 교화 방편으로 민중을 계도하고 화엄경의 一切無碍人이 一道出生死라는 사상에 의거하여 千村萬落으로 다니면서 신라를 불국정토로 장엄하였다. 이렇게 원효암은 무애성사께서 주석하시며 당대의 고승인 혜공, 대안 대사등과 법력(法力)을 겨루던 성지로서 수승(殊勝)하고 공덕이 상주(常住)하는 도량이다. 개창이후 여러차례의 중창을 거쳐 요사체는 1954년에 선적선화가 삼성각은 1984년에 법림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제 오어사 회주인 허봉 종원 화상이 원효암 신도와 함께 성지중창의 큰 원력을 세워 1996년 3월 8일에 불사를 시작하여 1999년 3월 7일에 낙성하게 되었다. 이 중창불사에 동참한 학현 스님을 비롯하여 추진위원회 회원 여러 불자등 사부대중의 수고와 돈독한 신심과 정성으로 원만히 회향되었다. 이를 후세에 길이 칭송(稱頌)코자 여기에 기념비를 세우는 바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가산 지관스님이 지은 게송(偈頌)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오어사의 원효암은 신라에서 제일 고승
원효, 혜공 양대사가 온갖 이적보이면서
자재하신 법력으로 중생 교화 하던 도량
동해바다 적멸궁에 계시옵는 관음보살
오어성지 관음전에 거룩하게 나투셨네
허봉스님 원력으로 많은 불자 정성모아
불국정토 희망하며 관음성전 중창하니
허공끝이 다하도록 그 공덕이 가이없다
(불기 2544년 9월 5일)
- 지금의 오어사는 사부대중과 스님들의 원력(願力)으로 많은 불사를 하고 있다. 원효암의 관음전 신축을 시작으로 자장암의 현대화 공사, 오어지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현수교, 대리석으로 조성한 해수관음상, 그리고 지금 일주문이 새롭게 건축되었다. 그리고 오어지 둘레길이 조성되어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감상하면서 산행하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지금도 개금불사(改金佛事)를 비롯한 새로운 불사들이 계속되고 있어 우리 지역에 명품사찰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고찰의 역사는 사찰내에 있는 나무들인데 오어사 경내에는 고목이 된 배롱나무와 보리수가 있다. 배롱나무는 더운 여름에 붉은 꽃을 피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활엽수인 보리수는 하늘 높이 솟아 그늘을 드리어준다., 그리고 원효암 계곡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고목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특히 원효암
에 있는 감나무는 200년은 넘어 보인다. 지금도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어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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