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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족 큰 사랑

결혼 40주년(1981.11.01~2021.11.01)

by 운제산 구름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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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지난 2006년에 “결혼 25주년을 지나면서”라는 글을 쓴 기억이 어제 같은데, 내 삶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지나가 버렸다. 당시 나는 이 글에서 아내와의 첫 만남, 두 아들의 출산,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 이 있었다. 2021년은 내가 아내를 만나 혼인(婚姻)한지 40년이 된다. 지 금 생각해보면, 지난 세월이 언제 지나갔는지 한 순간(瞬間)처럼 느껴진 다. “시간은 표적(標的)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빠르다”라는 말이 실감(實感)되어 내 마음속에 다가온다. 나에게 40년의 세월은 27세의 젊은 청년장교였던 내가 67세의 초로(初老)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해준 다. 무엇보다 내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와 지난 세월을 함께해온 나의 아내와 건강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행운(幸運)이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 나이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생(生)을 마감한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 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가끔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들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두 아들도 모두 결혼을 했고, 손자, 손녀도 있으니, 지난 시절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모습을 글로 남겨두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적어본다.

 

-나의 결혼(結婚)과 신혼(新婚)

 

아내와 나는 1년의 연애기간을 지나 1981/11/01/에 경북 경산에 있는 경보예식장에서 남편과 아내로 평생동안 살아가겠다는 혼인서약을 하였다. 당시 주례는 나의 은사인 황식모 교수님께서 해주셨고, 사회는 나의 ROTC동기생인 최인덕이 해주었다. 당시 결혼식에 와주신 하객들은 나와 아내의 집안 가족, 친척들, 나의 동료들, 나의 학군단 후배들이 성공적인 예식을 위해 헌신(獻身)해 주었다. 특히 후배들은 식장의 안내와 잔심부름을 맡아 주었고, 화려한 예복(禮服)을 입은 예도단(銳刀團)들 은 식장을 빛내주었다. 당시 나는 육군중위로 모교(母校) 영남대 학군단 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군단장님을 포함해 인접 학군단 교관들도 나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고마운 분들이었다. 예식후에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혼례때에는 나의 부모님과 장모님께서도 건강하셔서 나와 아내를 위해 덕담(德談)을 해주셨는데, 지금은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안타깝고 애통(哀痛)하다. 돌아가신 장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덕담을 주셨다. 당시 “결혼식 하루전에는 많은 비가 내려서 날씨 걱정을 했는데, 결혼 당일에는 거짓말처럼 비구름이 없어지고, 해가 돋고, 하늘이 맑고 투명(透明)하였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예식이 끝나고 피로연은 영남대 공대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신혼은 경산에서 월세방을 얻어 생활했는데, 가재도구(家財道具) 는 거의 없었다. 한 쪽에는 나의 전공 서적을 쌓아두었고 또 한 쪽은 팦음악이 좋아 군면세점에서 구입(購入)한 천일 전축이 자리하여 작은 방 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장롱(欌籠)이 없어 방에 이불을 접어 두었 고, 조그만 부엌에는 냄비 몇 개와 밥그릇, 수저 몇 개등이 신혼살림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신혼 시절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내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비록 가진 것 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즐거운 신혼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는 가난한 청년장교인 나를 만나 힘들다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아내의 도리(道理)를 다해주었다. 너무나 초라한 신혼이었지만, 서로가 좋아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물질적 (物質的)으로는 빈곤(貧困)했으나 정신적(精神的)으로는 풍요(豊饒)한 신혼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가족

 

아내와 내가 1981년 11월에 결혼하여 살아오면서 일어난 모든 일을 여기서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事件)은 두 아들의 출생과 결혼이라 하겠다. 이들은 2021년에 41세로 중년(中年)에 접어들었 다. 큰아들인 성국이가 큰며느리와 2017/12/02/일에 혼인하여 2018년(戊戌)에 손자 윤석(尹晳), 2020년(庚子)에 손녀 윤하(允荷) 두 남매(男 妹)를 얻어 육아(育兒)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인 평국이도 2019/4/20/ 일에 작은 며느리와 혼인하여 살아가고 있다. 나와 아내는 두 아들이 그 들이 사랑하는 배필(配匹)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행복하게 서로를 배려(配慮)하면서 잘 살아가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부부(夫婦)의 결실(結 實)인 두 아들이 성인(成人)이 되어 결혼을 하고 그들의 자녀를 키우고 있으니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아내와 내가 혼인한 지난 세월을 뒤돌 아보니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갔나 싶다. 두 아들과 손자, 손녀를 바라 보니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나와 아내가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얼마를 살지는 모르지만 손.자녀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후회(後悔)없는 노년 (老年)을 보내리라 다짐해 본다. 나와 혼인하여 지난 40년 동안 나를 내조(內助)하면서 두 아들을 성공적(成功的)으로 잘 키워낸 아내의 헌신적 (獻身的)인 정성(精誠)과 노력(努力)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 가정(家庭) 과 가족(家族)이 없었을 것이다. 이 지면(紙面)을 통해 다시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드린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금혼식(金婚式)이 되는데 그때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병환(病患)없이 살아가고 싶다.

 

-나의 두 며느리에게

 

모든 가정을 꾸려가는데 아내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남편의 대한 내조(內助)를 하면서 자녀(子女)를 양육(養育)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고사(故事)의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말처럼 자녀들을 위 한 어머니의 지혜(智慧)가 매우 중요하다. 자부(子婦)들은 대학에서 배운 지식(知識)을 잘 활용(活用)하여, 자녀교육과 남편에게 잘하는 현모양처 (賢母良妻)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의 손,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공적(成功的)으로 달성(達成)하 고,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휼륭한 인재(人材)가 될 수 있도록 그들 곁에서 항상 사랑과 인내(忍耐)로서 훈육(訓育)하여라. 가슴속 깊이에서 나오 는 모성애(母性愛)로 양육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우리 내외의 며느리가 되어주어 진심(眞心)으로 고맙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효심(孝心)깊은 착한 며느리, 너희들 남편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 아이들에게는 선량(善良)하고 신뢰(信賴)를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희망(希望)한다. 혼인(婚姻)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며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남녀(男女)가 인연(因緣)이 되어 사랑을 하고 모든 친척(親戚), 양가의(兩家) 가족(家族)앞에서 백년가약(百年佳約)을 약속(約束)하는 성(聖)스러운 행사이다. 서로가 사랑하여 결혼(結婚)을 하였으니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남편과 아내의 도리(道理)를 다해야함을 의미하기도 한 다. 이 세상의 반은 여성이고 또 반은 남성인데, 그렇게 많은 남자, 여자 중에 서로 만나서 평생을 함께하게 되었으니, 부부(夫婦)의 인연은 정말 소중하다. 내가 너희들의 시모(媤母)와 결혼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온 세월이 40년이 되었구나. 우리 내외(內外)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오로지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 미력(微力)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아들들이 어른이 되어 자부(子婦)들을 만나 가장(家長)이 되었으니 든든하기도 하다. 우리 두 아들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성장 (成長)하였다. 모태(母胎)에서부터 함께 친구이자 형제(兄弟)로 운명적 (運命的)인 관계로 지내왔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한 믿음은 돈독(敦篤)하다. 자부(子婦)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살아가면서 형제간에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동서(同壻)지간에도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살아주었으면 한다. (2021/11/01)

 

* 나와 아내의 결혼 4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2021/11/13(토)에 두 아들과 두 며느리의 주관으로 서울에서 나의 손자녀를 포함 모두 모여 한정식으로 점심(點心)을 하였고, 여 기서 우리 부부를 위해 두 아들부부가 준비한 선물(膳物)을 받았다. 곧 이어 작은 아들집으로 이동하여 기념 cake을 맛있게 먹고 손자녀의 재롱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만찬(晩餐)은 작은 아들내외가 직접 요리를 했는데, menu는 연어초밥을 비롯하여, beef steak, salad, 그리고 두 종류의 pasta가 준비되었고, 여기에다 큰며느리가 가져온 소갈비찜과 닭복음요리가 더해지니 진수성찬(珍羞盛饌)이 되었다. 이 지면(紙面)을 빌어 두 아들과 두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21/11/15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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