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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김형석교수의 "백세일기"를 읽고

by 운제산 구름 202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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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교수(1920-)백세일기를 읽고

 

우리 인간의 수명(壽命)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1920년생인 김교수는 2022년 지금 102세로 왕성(旺盛)한 사회 생활을 하고 계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90세를 넘기기 어려운데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장수(長壽) 철학자(哲學者)이다. 김교수처럼 월남하여 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사회의 원로(元老) 사학자인 김동길교수(1928-2022)2022/10/04/일 타계(他界)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김교수는 평생 독신(獨身)으로 살면서 자신이 정한 신념(信念)에 따라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사셨다. 연합뉴스는 김교수의 부음(訃音)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보수진영 원로인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94.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운동,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군부독재시절 사회, 정치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도 연루되어 대학에서 해직되었다.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고인은 1980년대 정치평론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생전 서약에 따라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장례는 자택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으로는 누이인 옥영, 수옥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7일이다.

 

김교수는 20-30대의 나이는 tempoadagio처럼 천천이 가다가 40대부터는 빠르게 지나간다고 합니다. 50에서 60, 70, 80이 더 빠르게 지나며 80이후는 눈 한번 껌벅일 때마다 1년의 시간이 지나 금방 90에 이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人生)에서 남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일을 모르고 지금 살고 있습니다. 오늘 각자의 삶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교수의 이력(履歷)을 보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다시 사학을 전공하여 사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필자도 영문과를 나왔지만, 전공을 바꾸어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여간 김교수는 사학자로서 성공한 분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애석(哀惜)하게도 고인(故人)이 되셨으니, 고통(苦痛)없는 천상(天上)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94세의 나이로 타계(他界)한 김동길교수와는 달리 지금도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이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계시는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김형석교수가 장수(長壽)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고인(故人)이 되신 김교수와 몇가지 공통점이 있지요. 성씨가 같은 김씨이며, 고향이 북한이고, 연세대에서 재직(在職)하셨으며, 나이도 90이 넘은 점입니다. 이제 김동길교수님은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김형석교수님은 우리 곁에서 큰어른으로서 사회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김교수는 자신이 100세가 되자 다음과 같이 그 감회(感懷)를 적고 있습니다.

 

내 나이 100.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백세일기, 본문에서)

 

이 책의 서문에서 김교수는 자신이 나이 40이 되면서부터 일기(日記)를 쓰기 시작하였고, 일기를 쓰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反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기 쓰기의 참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은 자주 보면서, 자기 인생과 인격을 위해서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나는 나 됨을 찾아 성장하고 새로워지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기쓰기를 한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것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지난 2년간의 일기를 읽고 오늘의 일기를 쓰면 좀 더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일기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백세일기, 서문에서)

 

 

백세일기를 읽어보면 필자께서 살아온 일생(一生)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초년은 북한에서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월남(越南) 후 중년에는 대학에서 재직하면서 후학들에게 철학적 지식을 전수(傳授)하셨으며, 대학 퇴직 후의 말년은 사회에 봉사하는 기독교적인 신념으로 고령(高齡)임에도 불구하고 강의와 저술에 전념하고 있지요. 김교수도 나이 90에 평소 친하게 지내온 동료 교수인 안병욱, 김태길 두 교수의 사망을 보면서 이제는 자신의 차례가 멀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실의(失意)에 빠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일념(一念)으로 지금의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김교수님의 활동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인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무병장수(無病長壽)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김교수님을 보면 저의 선친(先親)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지난 1986/12월에 67세의 나이로 타계(他界)하셨지만,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생존(生存)해 계십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의 선친께서도 김교수님과 같은 해인 1920년에 출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친께서는 회복할 수 없는 지병(持病)으로 열반(涅槃)에 드셨지요. 15세의 젊은 나이에 출가(出家)하여 50년이 넘는 세월을 불제자(佛弟子)로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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