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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춘암 노재환 선생님 추모

by 운제산 구름 202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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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암(萶菴) 노재환(盧在環;1923-2012) 선생님 추모(追慕)

 

 

20041124일 영남일보에는 춘암 노재환 선생 서예 개인전을 알리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 이어 23일부터 사흘동안 영천문화원에서 서예개인전을 연 춘암 노재환 선생(82. 영천시 성내동)은 지역 서예인들로부터 후학만을 위해 몸 바쳐온 진정한 서예가로 평가받고 있다. 춘암은 27년째 영천 3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대상으로 서예를 가르치고 있으며, 향교, 여성회관 등을 통해 배출한 제자만 무려 2천여명에 이른다. 김만호 선생의 문하생으로 서예계에 입문한 춘암은 국내 서예가중 [큰글씨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글씨체가 힘이 넘친다는 중국의 유명한 안진경 체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 서예가들의 평가다. 춘암은 서예를 배우기 위해 먹물대신 물을 붓에 묻혀 대청마루 바닥을 한지로 삼아 피나는 연습 끝에 웅혼한 필력을 얻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 본 스승도 [문하생중에 자네같은 사람이 있어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있겠다]며 춘암의 필체에 감동했다고 한다. 1974년 개인전 이후 제자들의 권유로 30년만에 두 번째 전시회를 가진 춘암은 지난 여름부터 평소 좋아하는 퇴계 이황, 조호익 등의 한시 작품 100여점을 선보였다.”

 

2012년 지역신문에는 춘암 선생의 타계(他界)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23일 영천시지

서예가 춘암 노재환 선생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

노선생은 1923년 영천시 대창면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45년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퇴임후에도 지역에서 서예를 가르치며 80평생을 후진양성에 힘써온 지역의 원로 교육자이다. 선생에 대한 일화로는 신문용지에 인물사진이 있으면 그 위에 글씨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붓과 종이의 각도는 90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글씨가 제대로 쓰여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에는 서예작품전을 개최하는 동시에 평소 공부하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사표가 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 영천시문화예술단체협의회장, 담수회, 산수회, 박약회, 영천시지회장등을 역임했다. 장례는 유림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복 씨와 장남 노성석 대구은행영남본부장등 21.

 

선생님과 필자와의 인연은 수년간 계속 되었다. 당시 나는 영천 3사관학교 대학부에서 학생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재직 중에 있었다. 학생들은 정규학사과정의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과외활동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여러 과정을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었다. 이 특활에는 검도, 태권도, tennis를 포함한 각종 운동부, 미술부, 영어회화부, 서예부, 기타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서예부 지도교수를 맡은 것이 선생님을 만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선생께서는 영천 지역에 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셨다. 선생님은 과묵(寡黙)한 성격의 소유자로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으셨고, 전형적인 선비의 기품을 지닌 교육자이자, 서예가였다. 매주 한번 씩 학교에 나오셔서 학생들에게 서예를 지도하시면서 마음과 정신이 밝아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말을 강조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번은 선생님을 뫼시고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안강 옥산서원으로 탁본(拓本)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탁본이란 돌이나 비석에 음각(陰刻)으로 새긴 글씨를 화선지와 먹을 이용해 종이에 옮기는 일을 말한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옥산서원의 역사와 조선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의 일화(逸話)를 이야기 하시면서 옥산서원의 현판(懸板)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다. 특히 옥산천 바위에 새겨진 세심대(洗心臺)를 탁본하면서 학생들에게 내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선생님,

한 때 인연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선생님의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렸지만, 제가 전역한 이후에 단 한 번 그것도 저의 사적(私的)인 일로 인사를 드린 것이 생전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가 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젊은 학생장교들에게 서예를 지도하시면서 글씨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人性)을 중요시하고 틈틈이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남겨준 몇 점의 글씨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1995(乙亥)8월에 박사학위취득을 축하하는 글을 대자(大字)로 써주셨지요. 바로 유란원형(幽蘭遠馨)”이라는 글씨입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주신 깊은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의 인자(仁慈)하신 모습을 볼 수 없어 가슴이 아픔니다. 인간은 누구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사대문(四大門)을 지나야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불교의 법구경(法句經)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하사류(如河駛流) 왕이불반(往而不返)

인명여시(人命如是) 서자불환(逝者不還)

 

빠르게 흘러간 강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한 번 간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말이 진실(眞實)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선생님, 이제 고통(苦痛) 없는 천상(天上)에서 자유롭게 다니시면서 더없이 넓은 창공(蒼空)을 화선지 삼아 선생님의 강()한 힘이 실린 서체(書體)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하시면서 이생에서 하시지 못한 일을 원()없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춘암 선생님의 명복(冥福)을 비옵니다.

 

 

 

 

 

-오래전에 필자가 사관학교 서예부 지도교수로 인연이 된 경북영천지역에서 서예의 대가(大家) 춘암 선생님의 타계(他界) 소식을 뒤늦게 알고 쓴 추모(追慕)의 글이다.(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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