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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파도소리

만추낙엽

by 운제산 구름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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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낙엽(晩秋落葉)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불교에서는 우리 눈으로 보는 현상계(現象界) 일체의 존재와 현상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네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만물이 생겨나서, 일정 기간동안 유지되다가, 그 생명을 다하여,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어 사라지는 것이 진실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진리(眞理)인 듯 하다. 모든 사물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어 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그 모습이 변화를 계속하여 노년(老年)에 이르게 되지 않는가? 지금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계절(季節)의 변화(變化)를 바로 느낄 수 있다. 지난 봄에 새로운 초록의 잎을 보여주던 수많은 나뭇잎들이 만추(晩秋)인 지금 황갈색의 단풍(丹楓)으로 변모(變貌)하였다. 거리 곳곳에 식재(植栽)된 은행목을 비롯하여 벚나무, 벽오동, 플라타너스(platanus), 그리고 느티나무등 다양한 활엽수들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 준다. 이들 모두가 여름에는 무성한 푸른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고, 지금은 울긋불긋하게 물들은 화려한 잎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을 단풍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먼 산으로 눈을 돌리면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한 폭의 수채화(水彩畵)를 보는 듯하다. 그야말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들이 수북하게 여기, 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도 늦은 가을이 아니면 볼 수 없다. 곳곳에 무리지어 있는 단풍을 살며시 밟아보면 낙엽이 내는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국의 학자인 임어당(1882-1976)은 그의 수필 “The Chinese Character”에서 사계(四季)중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서 단풍의 모습을 다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I like best of all autumn, because its leaves are a little yellow, its tone mellower, its color richer, and it is tinged a little with sorrow and a premonition of death. Its golden richness speaks not of the innonence of spring, nor of the power of summer, but of the mellowness and kindly wisdom of approaching age. It knows the limitations of life and is content.

 

(나는 가을이 가장 좋다. 잎은 노랗고, 색조는 더욱 깊어지고, 진해진다. 그리고 잎은 슬픔과 곧 다가올 죽음의 예감으로 물들어 있다. 짙은 금빛은 봄의 순수함이나 여름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시절의 원숙함과 다정한 지혜를 말해 준다. 잎은 생명의 유한함을 알고 만족한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가을 낙엽은 어떻게 보면 봄부터 여름까지 자신이 자리한 곳에서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도 살아남아 다양한 색채(色彩)를 지닌 단풍을 보여준다. 단풍으로 잠시 머물다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은 가지와의 이별이요,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데, 이 사실을 흔쾌이 받아드린다. 그리고 새 생명(生命)의 봄을 기다리는 지혜(智慧)를 보여준다. 가지에서 지면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모습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이별(離別)과 고독(孤獨)을 연상(聯想)하게 하고 죽음을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리라.

 

 

서양(西洋)사람들은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이별한 연인(戀人)을 그리워 한다는 odd pop이 있어 여기 적어본다.

 

Autumn leaves

The falling leaves drifted by the window

The Autumn leaves of red and gold

I see your lips, the Autumn kisses

The sun-burned hands I used to hold

Since you went away, the days grow long

And soon I hear old winter’s song

But I miss you most of all, my darling

When Autumn leaves start to fall

 

가을 낙엽

떨어지는 낙엽이 창가에 휘날리네

붉고 노란 가을 낙엽이여

나 그대와의 가을 입마춤이 그립네

한때 마주 잡은 햇볕에 탄 그대의 두 손

그대는 떠났고 날은 점점 길어져 가네

곧 옛 겨울 노래를 듣게 되지만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나 그대를 그리워 하리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떠나간 여인을 그리워 하는 내용으로, 붉고 노란 가을 단풍을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만추(晩秋)가 되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창공,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주홍빛의 감, 텃밭에 자리한 잘 익은 늙은 호박, 그리고 야산(野山)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단풍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眞正)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지면(地面)에 떨어지는 낙엽이 아닌가?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푸른잎으로의 생명을 다하고, 단풍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 잎들이 하나, 둘씩 지난 여름내 자리했던 가지를 떠나 지상(地上)으로 떨어져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는 땅속에 자리하여 내년에 돋아날 새잎을 위한 퇴비(堆肥)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낙엽의 아름다운 미덕(美德)이라 할 수 있다. 때가 되면 스스로를 희생(犧牲)하는 낙엽이야말로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의 흐름에 대항(對抗)하여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영국의 극작가인 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그의 14행시(行詩)sonnet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句節)이라 여기에 인용(引用)한다.

 

“Nothing against Time’s scythe can make defense.”

(그 어떤 것도 시간의 낫에 견딜 수 있는 것은 없으리)

 

 

비록 떨어지는 낙엽의 수명은 1년이 채 안되지만, 때가 되면 자신이 머물렀던 정()든 가지를 떠난다. 낙엽이 되어 지면(地面)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나뭇잎으로의 역할은 성실히 하지 않았던가. 떨어지는 낙엽은 지난 초봄부터 무더운 여름까지 가지에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단풍으로 변모하여 인간 세계를 더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感歎詞)를 나오게 해준 것은 낙엽이 우리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제 역할을 다하고 떠나가는 낙엽처럼 우리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온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完遂)하고, 자신의 운명(運命)이 다했다는 시간이 오면 후회(後悔)없이 떠나는 것이 참된 인생(人生)이 아니겠는가?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잠시 이런, 저런 상념(想念)에 빠져본다,(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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